섬띵 일기

제주에서 출산하기 : 반쪽짜리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기록

요망진 빵댕이 2022. 11. 20. 17:04

중급배아로 시험관 2차 성공) 6주~7주차:  2차 심장소리+입덧지옥 시작

* 2차 시험관 기록* 시험관 2차) 4일배아 2개 이식하고왔다 까먹전에 이식하고 집에 오자마자 기록한다. 월요일에 채취했고, 오늘은 4일 지난 금요일. 4일 배아로 이식이 결정됐다. 1차때 배아의 분

islandbubu.tistory.com


시험관과 임신 기록을 꾸준히 올리다가 한순간 멈췄다.
출산과 몸조리로 여력이 없었음. ㅎㅎ
30주 차에는 코로나도 걸리고..
정신없이 낳고 벌써 거의 50일 차 아기가 되어간다.
오늘은 출산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남편 덕분에 자부 타임 찬스.


제주에서 병원 선택하기

평생을 살았던 서울에서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처음으로 살게 된 제주에서는 당연 치 않은 것이 많았다.
병원도 마찬가지.
처음 제주에 내려와서 산부인과를 고르려고 할 때 당황했던 건, 꽤나 규모가 있는 병원인데도 홈페이지가 없어 정보를 알기가 어려웠다는 것.
작은 개인병원이면 모르겠는데 규모가 있는 병원도 마찬가지.
알고 보니 제주의 대부분 산부인과는 다음이나 네이버 카페의 회원제로 홈페이지를 대체해서 운영이 되고 있었다.
처음엔 선생님들 약력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병원 선택에 무지하게 애를 먹었다.
그나마 신제주에 홈페이지가 있는 병원은 조리원 예약이 다 차서, 집에서 가깝고 개중에 가장 신식으로 보이는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제주시에 위치한 드림 포레.
약간의 운명론자인 나는, 그래, 내가 가고자 했던 병원에 못 가고 이곳에 오게 된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라는 생각 (다분히 MBTI의 F적인 생각 ㅋㅋ)을 했는데, 그것은 참 트루였다.
진짜 럭키한 일들이 벌어졌다.


좋았던 점/ 별로였던 점

다른 병원은 안 가봐서 모르겠다. 근데 분명히 뭔가 잘 갖춰져 있긴 했다.

완벽히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의 방식을 접했을 때 '우리 동넨 안 이런데' 이런 느낌? ㅎㅎ
첫째로, 처음 갔을 때 예약시스템이 없었다.(과거형) 나름 5층? 까지 있는 대형 병원이었는데. 예약시스템이 없다니?
우리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ㅎㅎ
근데 다행히 얼마 안 있어'똑딱'어플이라는 병원 예약 앱에서 예약이 가능해져서 이문제는 해결.
둘째로, 역시 홈페이지가 없어서 이 병원에서 어떤 진료들을 보는지, 선생님들은 어떤 약력을 갖고 있는지 그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한눈에 보기가 어려웠고, 일단 공식홈피가 없다는데서 괜한 의구심이 들었다.
제주는 원래이래? 야매 아냐? 뭐가 무서워서 홈피도 없이 이렇게 폐쇄적으로 운영하지?
나중에 알게 된 공식홈피가 없는 이유, 납득은 갔다. 제주의 지역 특성인듯했다.
그리고 내가 카페에 익숙지가 않았을 뿐, 알고 보니 카페에 내가 궁금해하던 내용들이 다 있었고,
오히려 선생님들이나 병원에 질문을 남기면, 즉각적으로 댓글을 달아주고, 사람들도 댓글을 달아줘서 궁금한 점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좋았던 점은, 드림 포레에서 운영하는 '꿈 숲'이라는 문화센터.

이곳에서 태동검사 등의 의료적인 검사뿐 아니라, 다양한 산전교육(출산, 모유수유, 자연주의 출산 등), 산전/산후 운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산모들이 와서 쉴 수 있도록 공간도 아늑하게 잘 꾸며져 있어서 울 남편은 여기 올 때마다 세라젬했음 ㅋㅋㅋ

그리고 가장 이 병원이 가장 특별한 이유.

제주에서 유일하게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병원이라는 것.

자연주의 출산은 유도제나 무통주사 등 약물을 가능한 쓰지 않고,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산모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산모와 아이가 주체가 되어서 출산하는 방식이다.
자연분만이 의료진의 필요에 따라 약물도 쓰고, 아이를 억지로 배를 눌러 꺼내기도 하고, 관장/회음부 절개 등 산모를 의료 대상으로 보는 것과 대비된다.
완전히 집에서 낳듯이 자연스럽게 낳는 조산원도 있지만, 의료진이 없어 나 같은 노산모에겐 위험성이 있을 것 같아서 자연주의를 하고 싶지만 망설이던 차에. 이게 웬 럭키?
병원인데!! 의료진의 보호하에 자연주의 출산을 할 수 있다니??
만약 내가 간 병원에서 자연주의 출산이 없었다면 자연분만을 당연히 했겠지만, 내가 마침 간 병원에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데 와이낫? 내가 기회를 쫓진 않아도 기회가 오면 놓치지도 않는 타입.
자연주의 출산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참 몰랐었다...ㅋㅋㅋ)

그리고 내가 이병원을 택한 가장 큰 이유,

조리원 연계병원이라는 것. 그것도 새로 생긴!!!! 쌔삥!!

제주에서 병원과 조리원을 탐색하며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단연 조리원의 수준이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고 서울은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그만큼 서비스도 천차만별.
그래서 황제 조리원이라느니.. 몇천만 원 짜리도 있는데 제주는 완전 다 평준화. 그것도 하향평준화... ㅎㅎㅎ
아무리 찾아봐도 조리원의 내부 인테리어나 상태가 영.... 와... 여기서 내가 애를 낳고 조리를 한다고? 너무 끔찍했다.
그냥 서울 가서 낳을까? 도 잠시 고민했다.
그나마 병원이랑 한 건물에 있는 조리원이 있는 드림 포레가 그. 나. 마. 나아 보였기에 선택한 것도 있었다.
그. 런. 데!!!!! 내가 병원을 다니고 한 달 지나서인가? 갑자기 조리원을 확장 이전한다네?
우와... 새삥이다 새삥!!!
조리원 오픈전에 투어를 다녀왔는데, 우와... 너무 럭키다. 바로 메종포레 산후조리원.
난 역시 너무 럭키네? 이 정도면 지낼만하다!!! 싶은 조리원이 생겼다. 조리원 리뷰는 다른 포스팅에서...
(물론 서울 수준의 고오급 조리원은 여전히 없음. 내 생각에 메종포레가 도내에서 현재까지 최고임. )

마지막으로 의료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드림포레에는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시다. 그냥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선생님, 남선생님.
난 지금까지 부인과 진료는 여의사에게만 봐왔다. 가장 은밀한 곳을 남자 선생님께 맡긴다는 게 익숙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리라,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처음 병원 갔을 때, 그날 여선생님이 하필 휴무여서 남선생님께(현 원장님) 보게 되었다.
너무너무 친절하시고 따뜻하셔서 좀 놀랐다.
(왜냐하면 제주에서 다른 병원(피부과 등)을 갔을 때, 생전 처음 겪어보는 불친절함에, 아.. 제주도 빡쎄네.. 라고 생각했었는데,-병원뿐 아니라 다른 식당/카페 등 서비스에서도- 그래서 이 섬에선 친절한 사람만 보면 마음이 간다. ㅋㅋㅋ)
알고 보니 제주에 사는 내 친구도 전에 이분께 진료 봤었는데 도내에서 유명하고 좋으신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사실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병원에서 어떤 분만 형태를 선호하는지 물어볼 줄 알고, 또 내가 여건이 안되면 제왕을 할 수도 있으니까, 나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의 애를 다 낳을 때가 되었는데도 물어보지 않으셔서, 어느 날 자연주의출산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알고 보니 자연주의 출산은 여자 선생님(김 원장님)이랑 같이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어서 막판에 선생님을 바꾸게 되었다.
김 원장님은 여의사 특성상 아주 환자가 많으신데도 엄청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고 진료시간을 아끼지 않으신다. 조리원에 있을 땐, 퇴근하고 늘 조리원에 오셔서 회진하셨다. 정말 에너지가 엄청나신 분.
특히 이분도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주의 출산 병원에서 오래 근무하신 경력 때문인지, 아!! 그래서 시스템이 비교적 체계적이었구나! 를 그제야 이해했다.
암튼 두 분을 믿고 나는 출산을 준비하게 되었다.

헌데! 예정일이 넘어도 아이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뒷동산도 오르고 바닷가도 뛰고, 아이를 내보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응급상황 아니면 유도제를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가 희망했던 예정일은 벌써 지난 후였다.


출산 임박!! 입원

40주 하고 이틀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전혀. 컨디션은 너무쌩쌩해서 이대로 평생도 살겠는데? 싶었다.
근데 저녁에 이슬?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속옷에 묻어 나와서 병원에 연락하니 방문하라고 해서 가서 검사하니,
양수가 터진 것. ㄷㄷㄷㄷ 24시간 내로 낳아야 한다. 근데 진통이 오지 않았다.
입원이 결정되었다.

입원실은 개인실이어서 다행이었다. 좀 좁긴 했지만, 여러 명이 한 병실에 있을 때의 개인별 공간을 생각하면 넓은 거지 하면서 위안 삼았다. 실감이 안 났다. 이제 내가 여기서 애를 낳아서 나간다는 거지?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넘 맛났다. 지금도 먹고 싶다 ㅋㅋㅋ사진은 안 찍었지만 간식도 준다.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아침에 입원해서 저녁이 되고, 밤에 자고 다음날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진통은 없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로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더 있으면 아기가 위험할 수 있어서 유도제를 쓰기로...
내진할 때, 내가 속골 반도 부드럽고 넓어서 진통 오면 금방 낳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진통이 오지 않다니!!!!
그땐 몰랐다 유도제를 쓰는 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하.... ㅎㅎ

유도제 맞는중

드디어 출산!! (수중분만)

새벽 6시 20분경부터 유도제를 맞기 시작했다. 첨엔 조금씩 아프더니, 이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힘겨워할 때쯤 둘라 선생님이 오셨다. (둘라는 의료적 개입 없이 자연주의 출산을 돕는 출산 전문가다) 선생님은 가뜩이나 미칠 것같이 아픈 내 배를 붙잡고 압박을 하셨다. 울고불고 난리 났다. 엄마는 모성애가 본능이라는데, 나는 애고 뭐고 나부터 살아야 하니 다 포기하고 싶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늘 출산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었는데,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작은 구멍에서 그 큰 아기가 나와서 아픈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궁이 수축하면서 생기는 고통이 너무 끔찍했다, 1분 정도 간격으로 장기를 쪼이는듯한 고통이 계속됐다. 그 와중에 둘라 선생님의 압박도 계속됐다. 먹은 음식들을 다 토해내고, 다리는 벌벌 떨리고,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아니 누워있는 것도 힘들었고 누가 나 좀 죽여줘.. 했다. ㅎㅎㅎ 막판에는 정말 정신이 혼미해져서 힘을 주다가 잠들뻔했다. 남편이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는 것조차 힘들고 아프게 느껴졌다.
아이가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욕조로 들어갔다.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니 그래도 좀 살 것 같았다. 욕조 밖에서는 우주에 나 혼자. 블랙홀에 빨려 들어 몸이 찢기는 느김이었는데, 욕조안에서 남편에 기대어 있으니 따뜻하고 의지가 된다.
이 고통은 아이를 낳아야 끝난다는 말에.. 남편의 힘을 빌어, 이판사판 힘을 줬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우리 천사.

절대 안 울 거라던 남편은 아이가 나오는 순간 소리를 지르며 울먹였고,
나는 애기는 둘째치고 일단 내가 살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리고 따뜻하고 작고 미끄덩한 내 아이를 우리 품에 안았다.
믿기지 않는다.
내가 이제 엄마구나.

반쪽짜리 자연주의 출산

반쪽짜리인 이유는 유도제를 썼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도 출산 전에 출산 계획서에서 가능한 자연주의 출산을 원하지만 아이나 내가 위험할 경우 의료진의 개입을 허한다고 했기에, 고집 피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그렇게까지 자연주의 출산이 간절한 건 아니었기에.
유도제는 자연진통보다 훨씬 아프다고 한다.
원래 삼 남매가 꿈이었는데, 이번 출산을 통해 맘을 접었다. ㅋㅋㅋ
근데 또 그 고통이 잊힐 때쯤 아기를 갖는다고 하던데
나도 벌써 괜히 둘째 생각이 난다.
담엔 진통 잘 오게 평소에 복근을 좀 키워놔야겠다.

자연주의 출산 잘하려면 평소 운동을 잘하자. 난 유독 뱃심이 부족한 타입이라 복근이 너무 미약했고, 그래서 진통이 더 안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아기도 탯줄을 두 번이나 목에 감고 있어서 더 안 내려온 것도 있다고 한다. 나는 자연주의 출산을 너무 늦게 준비했지만 관심이 있다면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아니 갖기 전부터 몸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제주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한라산 뷰 조리원 천국 후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제주에서 출산한 특권, 한라산뷰 조리원 천국에 대한 기록 : 제주 메종포레 조리원

지난한 출산의 고통이 지나가고, 다들 천국이라 부르는 조리원에 입성했다. 내 출산시기에 맞춰 드림포레 조리원에서 확장이전한 메종포레 조리원. 쏘럭키!! ㅎㅎ 오픈 전 투어때 보긴했지만.

islandbubu.tistory.com